[친구사이] 일본 제25회 참의원 이시카와 타이가 인터뷰 : 0을 1로 만드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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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호]
[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9]
일본 제25회 참의원 이시카와 타이가 인터뷰
: 0을 1로 만드는 운동
日本第25回参議院議員 石川大我インタビュ
ー「0を1にする運動」
일시: 2025년 10월 18일 오후 4시 日時: 2025年10月18日 午後4時
장소: 서울 종로구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실 場所: ソウル・チョンノ区 韓国ゲイ人権運動団体「チングサイ」事務所
참여자 出席者:
일본 제25회 참의원(2019-2025) 이시카와 타이가 日本第25回参議院議員(2019–2025) 石川大我
RUN/OUT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대표 한윤하 RUN/OUT 韓国ゲイ人権運動団体「チングサイ」代表 ハン・ユンハ
RUN/OUT 친구사이 소식지팀 정재훈 RUN/OUT 同団体ニュースレターチーム チョン・ジェフン
성소수자 부모모임 상근활동가 이영인(통역 지원) 性的少数者の親の会 常勤活動家 イ・ヨンイン(通訳支援)

사진1.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진행된 RUN/OUT X 이시카와 타이가 인터뷰
(좌측부터 이영인, 이시카와 타이가(石川大我), 한윤하, 정재훈)
RUN/OUT:
이시카와 타이가 참의원님, 안녕하세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희는 친구사이에서 RUN/OUT을 기획하고 있는 대표 한윤하, 소식지팀 정재훈입니다. 반갑습니다.
石川大我参議院議員、こんにちは。韓国ゲイ人権運動団体「チングサイ」へようこそお越しくださいました。 私たちは、チングサイで「RUN/OUT」プロジェクトを企画している代表のハン・ユンハと、ニュースレターチームのチョン・ジェフンです。お会いできて光栄です。
이시카와 타이가(石川大我):
한국의 LGBT 커뮤니티 여러분, 그리고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구성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커밍아웃한 게이로 제25회 참의원에 당선되어 2019년부터 2025년까지 6년간 활동한 이시카와 타이가입니다.
韓国のLGBTコミュニティの皆さん、そして韓国ゲイ人権運動団体「チングサイ」の皆さん、こんにちは。私は2019年から2025年までの6年間、カミングアウトしたゲイとして日本の第25回参議院議員を務めてきた石川大我です。
친구사이는 10년 전, 2015년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방문했을 때 많이 들어봤는데, 이렇게 직접 교류의 기회를 갖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혹시, 최근에 한국의 퀴어퍼레이드에는 몇 명정도가 참석하고 있나요?
「チングサイ」という団体のことは、10年前の2015年、ソウル・クィア・パレードに参加するために韓国を訪れた際によく耳にしました。今回、このように直接交流する機会をいただけたことを大変うれしく思います。ところで、最近の韓国のクィア・パレードにはどのくらいの人数が参加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
RUN/OUT:
2025년 기준 17만 명 정도가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참석했습니다.
2025年の時点で、ソウル・クィア・パレードにはおよそ17万人が参加しました。
이시카와 타이가(石川大我):
17만 명이나요? 2015년에 제가 한국에 왔을 때 당시 갈등을 생각해본다면, 사회가 크게 변하고 있다는 증거 같습니다. 혹시, 친구사이가 주최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17万人もですか? 2015年に私が韓国を訪れた際の状況を思い返すと、社会が大きく変化したことを感じます。チングサイが主催しているわけではないのですか?
RUN/OUT:
저희가 주최하는 건 아니고 참여 단체로서 부스나 무대, 차량 퍼레이드 형태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에는 뒤에 걸려있는 사진 속 친구사이 언니들 중 일부가 주축이 되어 함께 하셨다고 해요.
私たちは主催団体ではなく、参加団体としてブース出展やステージ出演、パレード車両の運営などの形で関わっています。ただし、初期の頃は、後ろに掛けてある写真に写っているチングサイの“お姉さんたち”の一部が中心メンバーとして関わっていたそうです。

사진2.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실 내 포스터
"콘돔을 입어라! 그리고 사랑하라! 이반의 자긍심과 함께!"
이시카와 타이가(石川大我):
흥미롭네요. 사진이 꽤 오래되어 보이는데, 친구사이는 언제 만들어졌나요?
興味深いですね。その写真はずいぶん昔のものに見えますが、チングサイはいつ設立されたのですか?
RUN/OUT:
친구사이는 1994년에 설립되어 작년에 30주년 행사를 열었답니다. 현재는 정기 후원회원 약 600명, 활동적인 참여 회원 약 150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표는 회원들이 직접 선출하는 구조이고 (石川大我: 민주적이군요 (웃음)) 상근 활동가는 3명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정기모임을 열고, 합창, 수영, 독서 등 다양한 주제의 소모임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チングサイは1994年に設立され、昨年で30周年を迎えました。現在、定期的な寄付会員は約600名、積極的に活動する会員は約150名です。代表は会員による直接選挙で選ばれています(石川大我:「とても民主的ですね(笑)」)。常勤スタッフは3名で、月に一度の定例会のほか、合唱・水泳・読書など多様なテーマのサークル活動が活発に行われています。
이시카와 타이가(石川大我):
일본에서 이렇게 규모 있는 시민단체는 보기 드뭅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정부 보조가 없으면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는데, 친구사이의 후원 중심 모델은 상당히 흥미롭네요. 보통 한국의 시민사회는 이렇게 자발적 후원이 가능한 구조인가요?
日本では、これほど規模の大きい市民団体は珍しいです。特に日本では「政府の補助金がなければ人件費を維持できない」という認識が強いのですが、チングサイの寄付中心の運営モデルはとても興味深いですね。韓国の市民社会では、このような自発的寄付による運営が一般的なのでしょうか?
RUN/OUT: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단체는 오랜 기간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배제의 조건’ 이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후원 운동의 기반이 될 수 있었죠. 일부 자살예방 마음연결이나 청소년 사업에 공공의 프로젝트 단위 지원이 있긴 했지만, 기본적인 상근자를 비롯한 운영 및 캠페인 비용은 100% 개인의 자발적인 후원금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韓国の性的少数者人権団体は、長年にわたって国家からの財政支援を受けられませんでした。しかし、その「排除の条件」こそが、コミュニティ内部の自発的な寄付文化を育てる土台になったのです。一部の自殺予防や青少年支援プロジェクトに対しては公共助成が行われていますが、基本的な運営費やキャンペーン費用、常勤スタッフの人件費はすべて個人からの寄付でまかなわれています。
이시카와 타이가(石川大我):
놀랍네요. 종로면 서울의 도심이 아닌가요?
驚きました。ところで、チングサイの事務所があるチョンノは、ソウルの中心部ですよね?
RUN/OUT:
맞습니다. 마침 오늘 인터뷰가 진행되는 친구사이는 서울의 역사적인 도심이자 한국에서 가장 큰 게이 커뮤니티인 종로3가에 위치해 있습니다. 사실 일본 도쿄의 니쵸메(신주쿠2가), 그리고 서울의 종로3가나 이태원처럼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밀집한 공간은 단순한 유흥공간을 넘어 정치적 감각과 연대가 형성되는 장소이기도 하죠. 의원님께 도쿄의 니쵸메는 어떤 정치적·정서적 의미를 지닌 공간일까요?
はい。今日インタビューを行っているこの場所、チングサイの事務所は、ソウルの歴史的中心地であり、韓国最大のゲイコミュニティが集まるチョンノ3街にあります。東京の二丁目や、ソウルのチョンノ3街、イテウォンのように、性的少数者コミュニティが集まる空間は単なる歓楽街ではなく、政治的感覚や連帯が育まれる場所でもあります。石川議員にとって、東京・二丁目はどのような政治的・情緒的意味を持つ場所でしょうか?

사진3. 종로3가 프렌즈(Friends)에 방문한 이시카와 타이가
이시카와 타이가(石川大我):
맞습니다. 니쵸메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도쿄의 게이 커뮤니티로, 20~30대가 주로 찾는 게이바와 레즈비언바가 밀집한 상징적인 장소죠. 두 분께서는 일본의 게이바에 오신 적이 있나요? (RUN/OUT: 아직 오사카 게이바만 가봤습니다(웃음)) 그렇군요. 일본은 게이 커뮤니티가 비교적 다양해서 저와 같이 50대 정도의 연령대가 있으신 분들은 우에노나 신바시 같은 지역을 더 자주 갑니다. 실제로 게이 인구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나카노이기도 하구요.
そうですね。二丁目は世界的にも有名な東京のゲイコミュニティで、20〜30代が多く訪れるゲイバーやレズビアンバーが集まる象徴的なエリアです。お二人は日本のゲイバーに行かれたことがありますか?(RUN/OUT:大阪のゲイバーだけ行ったことがあります(笑))そうですか。日本ではゲイコミュニティが比較的多様で、私のように50代になると、上野や新橋といった地域の方に行く人も多いです。実際にゲイ人口が最も多く居住しているのは中野区です。
저에게 니쵸메는 25살 커밍아웃 이후 처음으로 게이 친구를 만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안전지대’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많은 LGBT 당사자에게 그곳은 정치와 일상의 경계에서 숨을 돌릴 수 있는 쉼터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私にとって二丁目は、25歳でカミングアウトした後、初めてゲイの友人に出会い、自分をありのままに受け入れられた“安全地帯”のような場所でもあります。今でも多くのLGBT当事者にとって、政治と日常のあいだで呼吸を整えられる“避難所”のような意味を持つのです。
하지만, 이러한 게이 커뮤니티에 모이는 사람들은 대체로 정치적 관심이 적습니다. 특히 니쵸메 같은 곳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게이바는 친구를 찾거나 연인을 만나고, 즐겁게 술을 마시는 곳이기 때문이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정치 이야기를 꺼내면 ‘눈치 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쉽습니다.
ただし、こうしたゲイコミュニティに集う人々の多くは、政治への関心があまり高くありません。特に二丁目のような場所では、政治の話をすることはほとんどありません。なぜなら、ゲイバーは友人や恋人を探し、楽しくお酒を飲むための場所だからです。そのような空気の中で政治の話を持ち出すと、“空気の読めない人”と思われてしまうことが多いのです。
그러다보니 이러한 커뮤니티와 함께 정치적인 움직임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물론, 모든 이가 외면하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제 선거에서는 니쵸메에 있는 게이바 오너가 스튜디오 공간을 제공해 ‘생중계 선거 활동’을 지원해 주기도 했습니다.
そのため、このようなコミュニティと一緒に政治的なムーブメントを起こすのは、現実的に非常に難しいことです。とはいえ、すべてが無関心というわけではありません。最近の私の選挙では、二丁目にあるゲイバーのオーナーがスタジオを貸してくださり、“ライブ配信型選挙活動”を支援してくれました。
RUN/OUT:
한국도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일례로 앞선 9월에 열린 RUN/OUT <커밍아웃 성소수자 정치인 가능성 찾기> 행사에서 한 커밍아웃 게이 정치인은 “정치에 도전한 이후, 오히려 주변의 게이 친구들이 내 활동을 부담스러워하며 멀어졌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의원님께서도 정치 활동을 하시면서 오프라인 커뮤니티의 지지나 거리감을 느낀 순간이 있으셨나요?
韓国でも状況は大きく変わりません。たとえば、今年9月に開催した RUN/OUT のイベント「カミングアウトした性的少数者政治家の可能性を探る」では、あるカミングアウト済みのゲイ政治家が「政治に挑戦してから、むしろゲイの友人たちが私の活動を重荷に感じ、距離を置くようになった」と語っていました。議員ご自身も、政治活動を行うなかでオフライン・コミュニティとの距離や温度差を感じられたことはありますか?
이시카와 타이가(石川大我):
맞아요. 저 역시 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대중에게 게이로 커밍아웃한 정치인인 저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사실 저보다도 다가오는 친구들에게 큰 사회적 위험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제가 난민 이슈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이외에도 다양한 인권 의제에 힘쓰고 있다보니 저와 함께 있다고 해서 무조건 아웃팅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밍아웃 정치인을 공개적으로 돕는다는 것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할 수도 있죠.
あります。私もまったく同じ経験をしました。公にゲイとしてカミングアウトしている政治家の私に近づくことは、実際にはその友人たちにとっても社会的リスクが伴うことです。もちろん私は難民問題など、さまざまな人権課題にも取り組んでいますから、私と一緒にいるからといって必ずしも“アウティングされ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それでも、カミングアウトした政治家を公に支援するということは、それ自体が危険と受け取られることもあるのです。
물론 선거가 끝난 뒤에는, 그때 도움을 주지 않았던 분들이 “같이 밥 먹자”고 연락하곤 합니다만 그럴 때마다 ‘밥을 함께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선거를 도와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솔직히 어쩔 수는 없죠 (웃음).
選挙が終わったあとに、かつて手を差し伸べなかった人たちが「今度ご飯でも」と声をかけてくれることもあります。もちろん嬉しいことですが、そのたびに「ご飯もいいけど、あのとき選挙を手伝ってくれたらもっと良かったのに」と思ってしまうのは正直なところですね(笑)。

사진4. 2015년 한국 언론과 인터뷰하는 도시마구의회 의원 시절의 이시카와 타이가(링크)
RUN/OUT:
20대 중반 커밍아웃 이후, 보좌진으로 정계에 입문하셔서 2011년 도시마구의회에 처음 출마·당선되기까지, 본격적으로 “정치에 나서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나 사건이 있었을까요?
20代半ばでカミングアウトされ、その後、議員秘書として政界に入り、2011年に豊島区議会議員に初当選されました。「政治に本格的に踏み出そう」と決意されたきっかけは何だったのでしょうか?
이시카와 타이가(石川大我):
제가 처음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사회의 구조—법률이나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RUN/OUT: 법에 관심을 가지신 것은 대학에서 법을 전공하셨기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정치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들어오기 전, 저는 사회를 바꾸고자 네 가지 단계를 실행했습니다.
私が政治に関心を持ったのは、「社会の構造――つまり法律や制度――を変えなければ世の中は変わらない」と感じたからです。(RUN/OUT:法律に関心を持たれたのは、大学で法学を専攻されたからでしょうか?)そうです。「政治でこそ変化を起こせる」と思いました。本格的に政治に入る前、私は社会を変えるために四つのステップを実行しました。
그중 첫 번째는 고립된 게이들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SNS도 없었고, 각자 외로움 속에서 지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NPO ‘피어프렌즈(Peer Friends)’를 만들었습니다. 게이·바이 남성들이 친구를 만들 수 있는 모임과 이벤트를 정기적으로 개최했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외로움을 묶는 게 사회 변화의 출발이라고 믿었습니다.
第一は、孤立したゲイ同士をつなぐことです。当時はSNSもなく、みんなが孤独のなかにいました。そこで私は NPO「ピア・フレンズ(Peer Friends)」を立ち上げ、ゲイやバイセクシュアル男性が友人をつくれる場を定期的に開催しました。一人ひとりの孤独をつなぐことが社会変革の出発点だと信じていました。
두 번째는, 비당사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에는 LGBT에 대해 잘못된 인식이 너무 많았거든요. 그래서 전국을 다니며 강연하고, 학교와 기업에서 강의하며, 정확한 정보와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第二は、非当事者に正確な情報を伝えることです。当時の日本にはLGBTに対する誤解が非常に多く、全国を回って講演を行い、学校や企業でも話をしました。
세 번째는, 미디어를 통한 가시화였습니다. TV 프로그램이나 신문에 출연하고, 책을 내면서 LGBT의 존재를 ‘보이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해 제가 쓴 책이 바로 『내 남자친구는 어디에 있나?』(ボクの彼氏はどこにいる?)입니다. 일본에서 꽤 유명한 출판사에서 출판되었고, 제가 태어난 순간부터 커밍아웃하기까지의 삶을 담았습니다.
第三は、メディアを通じた可視化です。テレビ番組や新聞に出演し、本を出版してLGBTの存在を「見える化」することが大切だと考えました。そのときに書いたのが『ボクの彼氏はどこにいる?』という本です。有名な出版社から出していただき、私が生まれてからカミングアウトするまでの人生を描きました。
마지막은 법과 제도를 바꾸는 일, 그것이 바로 정치였습니다. 그때가 2009년이었어요. 자유민주당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될 때 저는 사회민주당 당수였던 후쿠시마 미즈호 의원의 보좌진으로 1년 간 일했습니다. 그 경험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정치가 구체적인 일’이라는 걸 배웠어요. 말보다 실무가 중요하다는 걸 알았죠. 이 후 2011년 도시마구의회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습니다. 그게 제 정치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そして最後が、法律と制度を変えること、つまり政治でした。それが2009年のことです。自由民主党政権が倒れ、民主党政権に交代した時期、私は社民党党首・福島みずほ議員の秘書として1年間働きました。あの経験が決定的でした。「政治とは具体的な実務だ」と初めて知ったのです。そして2011年、豊島区議会選挙に出馬し、初当選しました。それが私の政治人生の始まりでした。
RUN/OUT:
의원님께서 2011년 처음 출마를 공식 선언하셨을 때, 곁에 있던 사람들과 조직은 어떤 구성으로 이루어졌나요?
2011年に初めて立候補を正式に表明されたとき、周囲の仲間や選挙チームはどのような構成だったのでしょうか?
이시카와 타이가(石川大我):
당시 제 선거를 핵심에서 도와준 사람 중에는 7년 동안 교제했었던 연인도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친구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와 제 남자친구를 포함해 선거의 핵심 구성원은 네댓 명 정도였습니다. 선거를 끝까지 해낸다는 것은 결국, 수백 명의 지지가 아니라 손에 꼽을 정도의 사람들과의 신뢰를 끝까지 지켜내는 일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中心で支えてくれたのは、7年間交際していた元恋人でした。今でも良い関係を続けています。私と彼を含め、コアメンバーはせいぜい4〜5人でした。選挙を支えるというのは、何百人もの支持を集めることではなく、最後まで信頼を守り抜く少数の仲間とともに走ることなのだと、その時に痛感しました。
단적으로,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제 오랜 동료이자 친구는 15년 전 즈음 제가 NHK 방송에 출연할 당시, 부모님께 커밍아웃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전에 친구의 부모님과 인사드린 적이 있어서, 제 방송 출연을 통해 친구의 정체성이 부모님께 알려질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제 친구는 오히려 “괜찮다, 나가라”고 응원해주셨죠. 이 경험을 통해 대중 커밍아웃이란 결코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지지 속에서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今日この場にも同席している私の長年の友人は、15年前に私がNHKの番組に出演した当時、ご両親にカミングアウトしていませんでした。私は以前にご両親にお会いしたことがあったので、私のテレビ出演を通じて彼のセクシュアリティが知られてしまうのではと心配しました。しかし彼は「大丈夫、出てください」と背中を押してくれました。その経験から、パブリック・カミングアウトとは決して“個人だけの行為”ではなく、誰かの支えの中で初めて可能になることを実感しました。
RUN/OUT:
사실 한국에는 2008년 이후 단 9명의 커밍아웃한 출마자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중 5명이 레즈비언, 3명이 트렌스젠더, 그리고 단 1명이 게이죠. (石川大我: 당선자가 있나요?) 2022년 마포구의 차해영 구의원이 최초입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국회에 성소수자 관련된 입법이 시도되면 관련된 의원실의 행정이 마비됩니다. 압도적인 다수의 폭력이 이뤄지죠. 선거 출마 과정 혹은 의정활동 과정에서 성소수자로서 느끼신 어려움이나 장벽이 있었다면요?
実は韓国では2008年以降、カミングアウトした立候補者はわずか9名しかいません。そのうち5名がレズビアン、3名がトランスジェンダー、そして1名だけがゲイです。(石川大我:当選者は?)2022年、マポ区のチャ・ヘヨン議員が初当選しました。いまだに国会で性的少数者関連の法案が出ると、その議員の事務所が一時的に麻痺するほどの反発があります。選挙活動や議員活動のなかで、性的少数者として感じた困難や壁はありましたか?

사진5. 2025년 10월 국회에서 개최된 국제 혼인평등 컨퍼런스에 참여한 이시카와 타이가(링크)
이시카와 타이가(石川大我):
한국은 일본보다 ‘남자다움’을 훨씬 더 강하게 요구하는 사회라고 느꼈습니다. 출마한 게이가 적은 이유는 병역 제도 같은 남성주의가 강한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을까요? 나아가 다소 획일적인 문화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당장 어제 국회에서 컨퍼런스 행사가 끝나고 뒷풀이를 갔는데, 술이 소주나 맥주만 있더라구요. 일본에서는 술집에 가도 비교적 다양한 선택지가 제공되는 편이었어서 비교적 단조로운 선택지가 오히려 흥미로웠습니다(웃음).
韓国は日本よりも「男らしさ」を強く求める社会だと感じます。ゲイの立候補者が少ないのは、兵役制度など、男性中心的な構造が大きく影響し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さらに、文化的な一様性も関係しているように思います。昨日、国会でのカンファレンス後の懇親会に参加しましたが、飲み物が焼酎とビールだけでした(笑)。日本ではお酒の種類がもう少し多様なので、その単調さがむしろ印象的で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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